종각 The Story of the Bell Maker 鐘閣

9.5/10
共2761評論
類型   드라마
時長   96분
語言   한국어
地區   한국
上映   08月30日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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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劇情

.

고령사의 전설적인 종을 만든 종쟁이 석숭(허장강)은 영실(문정숙)이라는 처녀와 이웃하여 노년을 절에서 보낸다. 어느 날 영실은 석숭의 과거를 듣게 된다. 이름난 종쟁이의 손자로 태어나 하인 노릇을 하던 석숭은 연인 옥분(문정숙)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 것을 약속하고, 옥분이 급사하자 약속을 지키기 위해 종을 만들기 시작한다. 종 만드는 것을 배운지 10여년, 스승이 죽고 난 후 떠돌던 그는 한 과부(문정숙)를 만나 함께 살게 된다. 그의 할아버지는 종을 만들다가 경쟁자에게 패배하자 자살했는데, 석숭은 경쟁자인 명장의 종과 할아버지가 만들었던 종을 훔쳐 달아난다. 그가 명종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던 중에 아내는 아기를 낳다 죽는다. 명종을 만들기 위해 길을 떠난 그는 마침내 할아버지와 그의 경쟁자인 명장이 만든 종의 쇳물을 녹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지만, 딸을 잃어버린다. 한편 영실은 석숭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혹시 그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아였던 그녀의 아버지 역시 종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때는 2차 대전 중, 일제가 조선에 있는 모든 쇠를 강탈하던 시기여서 고령사의 종 역시 공출될 운명에 처한다. 고민 끝에 석숭은 종을 떼어 숨기려 하다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영실의 품안에서 죽음을 거둔다.

양주남 감독의 을 지금 보면서 가장 놀라게 되는 것은 이 영화가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한국영화(들)과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50년대의 한국영화가 하나의 일직선적인 단계를 밟으면서 우리들의 영화언어를 진화시켜 온 대신 그 안에 수많은 비탈과 주름을 만들어내면서 종종 다른 방식의 계보를 통해서 우회하거나 아니면 다른 방식의 균형을 통해 좌표의 강조점을 옮긴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단순히 드러난 기술적 차이나 또는 그에 의지한 영화수사학의 변화가 아니라, 영화 안에서 그 이미지와 소리의 조합들이 세상과 관계 맺으려는 방식의 차이이다. 무엇보다도 은 영화가 그 안에 간직하려는 그 모든 것의 자취에 대해서 점점 더 공간의 내재적인 구성에 이끌리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의 영화들과는 정반대로 그 모든 것이 시간적인 고리의 문턱에 서서 그 앞과 뒤를 계속해서 오고간다. 그것은 동시대적인 영화가 우리들과 관계맺는 시각적인 코드들이 기대어 선 정서와 지각의 작용들과는 이 다른 방법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그 안에서 그 영화를 만나는 순간 디제시스 안에 포함되는 상상적 관객으로서의 우리들의 구성은 다른 방식으로 다른 문제들에 의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은 우리들의 영토 안에서 그 예술적 인과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우리들과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사이에 세워질 수 있는 다른 방식의 시선에 대한 차이의 진술로 설명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두 명의 등장인물은 말하고 듣는 관계로 주어져 있다. 종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서 자기를 사랑했던 여자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장인은 그의 모든 나머지 삶을 여기에 마친다. 그런데 그의 삶에 또 한 명의 여자가 끼어든다. 그것은 종 만드는 장안에게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변화이며, 그 자신의 삶의 성숙이다. 영화는 플래쉬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은 단칸방에서 처음 만나는 늙고 병든 종 만드는 장인과 부모 없는 젊은 처녀 사이의 이야기의 교직관계를 이루며 전개된다. 그 두 사람의 기억은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둘 사이의 희미한 연결의 선은 그 차이의 시간 사이에서 고리를 찾아간다.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는 그 둘 사이가 아버지와 딸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만을 남겨놓은 채 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이 가져다주는 허구적 상상에 의해 둘로 나뉘어진 이야기 사이를 하나로 이어붙일 수 있게 버려둔 채 흘려보낸다.

무엇보다도 에서 그 중심에 놓여있는 것은 종의 의미변화일 것이다. 늙고 병든 종 만드는 장인과 부모 없는 소녀 사이의 연결을 그 종소리에서 시작하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미학적 장치이다. 이 영화의 모든 미학적 기능은 들리는 것에 기대어 서 있다. 종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울릴 때이며, 두 사람 사이의 기억이 서로 교차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내용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동일한 청각적 바탕 위에서 눈에 떠오르는 기억 안의 연상의 이미지에 옮겨간다. 그러니까 양주남 감독의 이 영화는 이미지에 우선권을 주는 지금의 영화들보다도 더 앞서서 청각에 의지하여 진술되는 이야기의 방식 아래 시간의 매개에 따라 이미지를 귀속시키는 모던한 영화의 전통 아래 선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아무런 관련을 맺지 않으면서 그 스스로의 힘으로 이미 그로부터 일 년 후에 만들어질 알랭 레네의 의 곁에 바로 앞에 있는 영화이다. 또는 아시아의 바로 옆에서 서울과 히로시마는 영화에서 시간을 생각할 수 있었던 미학적 동시성의 장소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거기서 더 나아간다. 양주남 감독은 듣고 말하기의 청각적 이미지로부터 그 둘의 대화를 통해 결국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더해 그것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이끈다. 그러니까 기억의 일부였던 종소리로 인한 삶의 자취들의 나뉘어진 시간의 구역들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논리적인 인과관계가 아니라 그 둘 사이의 마음 안의 정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종소리는 감각적 기능으로부터 정서적 차원으로 상승하여 옮겨간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종각으로부터 뒤로 물러서면서 늙고 병든 종 만드는 장인의 삶의 자위를 보여주는 파노라마적인 장면은 카메라의 공간적인 이동이 아니라 그 스스로 펼쳐놓은 시간적인 흔적들의 더없이 슬픈 탄식의 비극으로 승화한다. 그것은 이미 주어진 사건의 완성을 통해 세상을 마무리짓는 공간의 영화들로부터 벗어나서 주어진 세상이 흘러가면서 변화하고, 그 변화 안에서 주어진 운명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고, 그러면서 예술의 영원성을 통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거기에 머무는 영원의 형상을 찾는다. 이것은 정말로 한국영화에서 잊어버렸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하나일 것이다. 은 자기의 시대에 속해 있으면서도 주어진 시대를 넘어선 '발견'의 영화이다.

(1998년 제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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