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필름 No Film

.'네가 오쟁이진 남편이 되리라고 저기 높은 곳에 씌여 있다면, 네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 반대로 그렇게 안될 것이라고 씌어 있다면 그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넌 그렇게 안될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드니 디드로는 <운명론자 자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러한 운명론처럼 대본이 씌어지고 영화로 옮겨간다. 밀실에 배우들이 들어와 새로 시작할 작품의 크랭크 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무료하게 기다리지만 리허설은 시작될 기미가 없다. 기다림에 지쳐 대본을 읽어보자 밀실에서의 행적이 이미 대본 속에 써 있다. 영화는 그렇게 이미 시작되었다. 대본이 먼저인가, 아니면 그들의 행동이 먼저인가. 혹은 영화가 그들의 삶인가, 아니면 그들의 삶이 바로 영화인가. 게임의 규칙을 간파한 배우들은 이제 능동적으로 게임을 즐겨나간다.
(1998년 제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